
40세가 되어 빛을 발한 카이사르의 인생은 짧았으나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회자되고 있다. 생애 첫 전쟁, 갈리아 전쟁 1년차 에 그는 처음이 아닌 것 처럼 뛰어났다.
심지어 천재인데 부지런 했고 독창적 이었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갈리아 전쟁기를 쓸 수 있었다. 그의 글은 깔끔하고 논리 정연하고 긴박감과 유머가 어우러져 전혀 지루하지 않고 정말 재미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책이 2000년이 지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게 될 줄 알았을까?
그는 로마 시민에게 자신이 한 일을 가감없이 전달하기 위해 글을 썼지만 덕분에 먼 미래의 나는 카이사르 라는 천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판단을 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기원전 58년에 카이사르는 42세가 되었다. 그리고 집정관으로서 로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갈리아로 가게 된다.
카이사르가 직접 밝힌 바에 의하면 갈리아 전쟁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갈리아는 현대 유럽의 남쪽 지방이며 당시에는 수많은 부족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 중 헬베티족이 그들이 살던 곳을 버리고 로마 영역으로 가까이 이동하며 혼란을 야기하는 일이 일어난다.
갈리아 지역 위쪽으로는 게르만족이 살고 있었는데 게르만족의 땅은 척박하고 살기 어려웠기 때문에 갈리아로 침범하는 일이 잦았다.
게르만족은 말을 잘 타고 사나워서 갑자기 처들어와 약탈을 일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헬베티족의 땅은 게르만족과 바로 맞닿아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게르만족으로부터 도망쳐서 안전한 지역으로 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카이사르의 첫번째 임무는 헬베티족의 이동을 막고 갈리아와 로마인의 친구(하이두이족 등)의 평화를 지키는 동시에 로마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 된다.
먼저 카이사르는 헬베티족이 로마의 프로빈키아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그들이 길을 우회하게 만들고 갈리아 지방에서 전쟁을 하도록 했다.
그는 헬베티족을 추격하며 소규모 접전을 벌이는 와중에 군량도 신경써야 했다.
로마군은 하이두이족으로부터 식량을 제공받기로 했으나 하이두이족의 내부분열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부족의 내부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벌어진 회전에서 카이사르는 다음과 같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고지를 차지에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었다.
베테랑 병사들을 3열 전투 대형으로 배치하고 신규 군단을 배치하여 사면을 장악했다.
카이사르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말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보내 로마군 전체가 위험을 똑같이 나누고 도망칠 기회를 제거했다.
밀집 대형으로 공격해오는 적에게 높은 곳에서 창을 던져 밀집진을 무너트렸다.
1열 2열 그리고 3열을 잘 활용하여 퇴각하는 적과 새롭게 공격해오는 적에 잘 대처했다.
카이사르는 헬베티족의 항복 의사를 전달 받고 그들이 떠나온 땅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그 지역이 비게 되면 게르만족이 갈리아로 이동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부족들에게 그들이 도시를 재건하는 동안 식량을 제공하게 했다.
갈리아 부족들이 카이사르를 찾아와 부탁했다.
아르베르니족과 세콰니족이 게르만 용병을 고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게르만족이 비옥한 갈리아 땅에 눌러 앉은 것이다. 그리고 갈리아인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제발 이 게르만족을 쫓아달라며 카이사르에게 호소한 것이다.
카이사르는 밤낮 강행군으로 베손티오(브장송)을 먼저 차지한다. 베손티오는 두 강이 감싸듯 흐르는 천연 요새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군수품을 정비하던 중 이런! 이번에는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게르만족과 전쟁을 하기 두려웠던 병사들이 울며 운명을 한탄하고 유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카이사르가 병사들에게 한 멋진 연설이 갈리아 전쟁기에 나와있다.
여기서 다 인용하지 못하지만 한 구절만 소개하겠다.
“왜 그대들은 자신들의 용기와 카이사르의 능력을 의심하고 절망하는가?”
– 갈리아 전쟁기, 율리우스 카이사르
너무 멋있는 말이다.
그리고 연설 끝에 자신은 10군단의 충성을 절대 신뢰한다고 덧붙이며 병사들의 사기와 의욕에 불을 붙였다.
어떻게 말로 몇만의 병사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었을까. 과연 카이사르는 능력자다.
역시 먼저 외교로 해결하려 했으나 당연히 게르만인들은 떠나기를 거부했고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카이사르의 군대는 상대적으로 병사의 수가 열세였기 때문에 일종의 허세전술을 사용한다.
그리고 게르만족의 좌익이 가장 취약하다 판단하여 그 곳을 먼저 공략한다.
또한 기병대가 아군의 약한 곳을 보완하여 전쟁에 승리하게 된다.
그렇게 갈리아 전쟁 1년차가 마무리 되고 카이사르는 순회 재판을 주재하기 위해 갈리아 키살피나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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