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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장군 카이사르

뛰어난 장군 카이사르
뛰어난 장군 카이사르

뛰어난 장군 카이사르

드디어 뛰어난 장군 카이사르 를 소개할 때가 왔다. 

갈리아 전쟁의 마지막 무대가 되는 알레시아 전투를 보고 나면 뛰어난 장군 카이사르의 진목면을 알 수 있다.

카이사르가 직접 적은 공성전 준비 과정과 이를 수행하는 군사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카이사르가 왜 뛰어난 장군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갈리아 전쟁 7년차에 이어진 후편으로 그 전에 일어난 일들은 여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뛰어난 장군 카이사르의 외교

카이사르가 뛰어난 장군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그의 전쟁술과 독창성 이외에 외교 능력에 있다. 

군사를 이끌고 적진에 나아가 전쟁을 하는 장수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 동맹을 확보하는 것

2 군수품을 제때 지급하는 것

나라에서 멀리 원정을 나간 군대는 이를 적진에서 해결할 수 밖에 없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외교 능력이다. 

카이사르는 원정 초기부터 하이두이족을 잘 이용했고 하이두이족도 로마군의 세력이 강해짐에 따라 이득을 취했다. 

갈리아 대 반란이 일어나면서 이 동맹이 흔들리게 된다. 

하이두이족 안에 갈리아 편에서 전쟁에 참여하려는 세력이 생겨났다. 

그들은 로마군이 하이두이족 군사를 몰살 했다는 거짓 선동을 펼치며 노력했고 그리하여 하이두이족은 전쟁에 참여하며 갈리아 전체가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뛰어난 장군 카이사르의 군사 작전

이런 일이 로마군에게 벌어지는 동안 카이사르와 6개 군단은 게르고비아에서 빠져나갈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아바리쿰 전투가 끝난 후 카이사르는 부장 라비에누스에게 4개군을 맡게 갈리아 부족을 정벌하게 했다. 

카이사르는 나머지 6개군을 이끌고 베르킨게토릭스를 쫓았는데 이들이 서로 대치 하게 된 곳이 게르고비아다. 

하이두이족도 반란에 가담하면 카이사르와 로마군은 적에게 둘러싸이는 심각한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 

카이사르는 철수 작전을 세운다.

한마디로 도망치지 않는 척 도망치는 작전 이었다.

손에 땀을 쥐게하는 카이사르의 도망 안 치는 척, 철수하는 작전을 꼭 읽어보기 추천한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


뛰어난 장군 카이사르의 군사 교육

그리하여 시작된 작전은 어느 날 찾아온 행운을 힘입고 성공하는 듯 했으나 결과적으로 절반의 성공이었다. 

이유는 사령관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군사들에게 있었다. 

이 때 카이사르가 군사들을 훈계하고 가르치고 또 격려하는 것을 보면 카이사르가 뛰어난 장군 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 먼저 훈계의 이유를 분명하게 밝혔다
  2. 그리고 전쟁에서 중요한 지형 상의 이점을 설명했다.
  3. 중간에 한번 용기를 칭찬하고
  4. 그러나 사령관의 판단보다 자신의 판단을 따라간 오만을 질책했다.
  5. 병사들이 가져야 할 자질을 설명하고
  6. 이 패배는 용맹과 기술의 부족이 아님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주면서 의기소침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뛰어난 두 장군의 판단과 그 결과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전쟁터에서 뛰어난 장군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하고 신속한 판단력과 결단력이다. 

그 판단의 결과를 보면 누가 더 옳았는지 알 수 있다.

  • 카이사르

하이두이족 마저 돌아서며 식량 보급을 보장받지 못하게 되었다.

카이사르는 신속한 행동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다. 

그는 우선 부장 라비에누스와 합류하고 게르만족에 기병대를 요청하며 식량을 모으는 등 다가올 전쟁을 준비했다.

그리고 알레시아 요새를 둘러싼 철통 방어선을 건설한다.

그 후 일어난 일은 모두 카이사르의 예측을 벗어나지 않았다.

  • 베르킨게토릭스

또 다른 뛰어난 장군 베르킨게토릭스는 알레시아 요새로 스스로 들어갔다.

그는 왜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카이사르와 정면 전쟁을 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의 실패에 자신감을 잃은 것인가?

아마 알레시아 요새는 카이사르도 공략할 수 없는 안전한 곳이라 판단한 것인가?

이제 로마군이 갈리아에 고립되어 싸우지 않고 가만히 두어도 굶주림으로 패배할 것이라 생각한 것인가?

어쩌면 게르고비아 때와 달리 로마군은 동맹 없이 고립 되었기 때문에 다른 결말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뛰어난 장군 카이사르는 천재

뛰어난 장군 카이사르는 난공불락의 요새를 보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알레시아 요새는 산꼭대기에 위치하고 두 줄기 강이 언덕 양쪽에서 흐르고 있었으며 도시 전면에 넓은 평지가 있었다. 

카이사르는 이 요새를 보고 기가막힌 전략을 떠올렸다.

로마군은 장군의 지휘에 맞춰 참호를 파고 보루를 새우고 땅 밑에 함정을 만들었다. 

심지어 무시무시한 함정에 귀여운(?) 별명도 붙여주었다. 

카이사르의 방어 시설은 총 21키로미터로 적은 인원으로 최대의 방어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니까 카이사르는 요새 안의 베르킨게토릭스와 밖의 갈리아부족을 차단하는 벽을 만드는 동시에 안밖에서 다가올 공격을 막는 방어 시설을 만든 것이다.


알레시아 공성전

드디어 갈리아 대반란의 막을 내릴 때가 왔다. 

갈리아군은 카이사르의 방어 시설을 뚫기 위해 노력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로마군의 방어선은 그 기능을 톡톡히 해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마지막 결전을 준비했다.

정확히 한순간에 모든 곳에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들려오는 적군의 함성 소리가 로마군 병사들의 사기를 흔들었다.

“결국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병사들의 마음을 더 효과적으로 흔드는 법이다.”

– 카이사르

카이사르는 높은 곳에서 모든 방면의 상황을 파악하며 열세에 몰린 곳에 병력을 지원했다.

로마군은 갈리아 대군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갈리아 원정의 결말

승리는 카이사르 도 예상했던대로 방어선의 약점에서 결정적으로 로마편으로 기울었다.

갈리아도 방어선의 약점을 집중 공략했다. 

때가 왔음을 직감한 카이사르는 그 곳에 병력을 투입하고 자신이 직접 최전선으로 향했다. 

동시에 다른 기병 부대를 보내 바깥쪽 방어선을 돌아 적의 후방을 공격하게 했다.

그리고 승리했다.

카이사르는 적장 베르킨게토릭스를 생포하고 하이두이족과 우호관계를 회복했다.

이로써 갈리아는 로마의 프로빈키아가 되었으며 그 후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