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리아 전쟁 2년차 에는 더욱 흥미진진한 일들이 벌어진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록한 갈리아 전쟁 2년차 를 읽으며 갈리아 부족들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 갈리아 땅에는 수많은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의 국가를 이루거나 단합하지 못했다.
그래서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었고 또 쉽게 의견을 번복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맹세를 했더라도 쉽게 서로 배신할 수도 있었다.
손자병법은 통일된 지휘 체계가 승리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전쟁을 모르는 군주가 전쟁에 능한 장수에게 참견하기 시작하면 전쟁에 승리할 수 없다.
그러니까 갈리아 부족들은 애초에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을 일으킨 것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키살피나에서 순회 재판을 주재하고 있었다.
그때 소문이 들려왔는데 벨가이 부족이 로마에 대항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음모를 꾸미게 된 이유는 미래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로마가 그들을 공격 한다 거나, 로마가 갈리아 땅을 빼앗는다 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벨가이 부족은 다른 부족을 선동하여 카이사르를 공격하기 결단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판단과 행동이 빠른 사람이다.
그는 급보를 전달받은 즉시 2개 군대를 추가로 편성하고 정보를 모으고 군량을 확보하며 벨가이로 진군한다.
그러자 레미족과 기타 부족이 카이사르에게 나아와 복종을 맹세하고 카이사르는 그들을 통해 벨가이인의 정보를 얻는다. (벨가이부족은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벨가이인은 사실 옛날에 갈리아로 넘어와 정착한 게르만 혈통의 부족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용맹 하며 10만의 정예 병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로마와 전쟁하여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카이사르는 적을 분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이두이족에게 그들의 영토에 들어가 약탈을 하도록 하는 양동작전을 수행하도록 지시한다.
갈리아 전쟁 2년차 첫 전투는 엔강 근처에서 이루어진다.
카이사르는 엔강을 로마군 진지 후방을 보호하고 보급품을 이송 하며 다른 부족과 소통하기 위한 통로로 이용했다.
이 때 카이사르는 수가 월등히 많은 적군을 선제 공격하지 않고 기병대끼리 전초전을 벌이게 하여 용맹함을 견주어 본다.
아군이 충분히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수적으로 열세인 아군의 양 날개를 보호하기 위해 완만한 언덕에 진지를 구축하고 양 측면에 참호를 파고 보루와 발사기를 설치한다.
그 후 이루어진 전투는 먼저 불리한 지형을 감수하고 공격에 나선 벨가이인의 패배로 끝난다.
그들은 엔강을 건너 로마군 진지를 습격하려다 실패하고 많은 병사를 잃었다.
그리하여 벨가이족은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 익숙한 곳에서 전쟁을 하기로 결심했다.
벨가이인의 그 결정이 전투의 승패를 좌우 했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들은 한번의 패배와 이어진 후퇴로 구심력을 잃었다.
그 결과 카이사르가 원했던대로 벨가이족의 군대는 작은 단위로 나누어지게 된다.
카이사르와 로마군은 벨가이족의 도시(요새)를 정복하며 승기를 잡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벨가이 부족이 로마군이 요새를 공략하기 위해 세운 토루와 공성탑만 보고 무서워서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 했다는 것이다.
세계 최초! 고속도로에 진심인 나라, 로마인들의 뛰어난 건축 기술이 이로써 증명되었다.
카이사르의 글은 읽는 사람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 전쟁은 네르비족의 기습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전투는 벨가이의 용맹한 부족 네르비족과의 전투다.
노예나 포로는 적군에 대한 좋은 정보를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아군의 정보를 넘기기도 한다.
로마군은 네르비족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는데 보통 군단과 군단 사이에 군수품과 같은 수송 행렬이 끼어 행군하게 된다.
어느 똑똑한 포로가 첩자로 변신하여 이 부분을 공격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 작전은 나름대로 성공했다.
그러나 상대가 그 카이사르와 로마군이었다.
로마군은 미리 파악해 놓은 위치에 진지를 짓게 되는데 먼저 도착한 군단이 작업을 시작한다.
이 때 네르비족이 그들을 기습했다. 치사한 방법이지만 네르비족은 필사적이었다.
카이사르는 모든 조치를 한번에 해야 했지만 사실 전열을 가다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두가지 요소가 로마군을 구했다고 썼다.
그리하여 시작된 전투에서 로마군의 전면과 좌익이 먼저 승기를 잡고 적군을 죽이며 적군의 진지를 점령하러 나아갔다.
따라서 우익이 로마군 진지에 남게 되었는데 좌익과 전면이 빠지면서 사방이 적으로 에워쌓이게 되었다.
우익의 병사들은 너무 좁은 곳에 밀집되어 제대로 전투를 벌이지 못하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방패를 들고 직접 최전선으로 나아가 병사들을 독려하며 대열을 넓히고 방향을 돌려 방진을 만들게 했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막기 위함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적군의 진지를 점령한 10군단이 카이사르를 지원하러 왔고 전세가 로마군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이 전투로 네르비족이 궤멸 되었다고 카이사르는 적었다.
이 전투를 계기로 벨가이족의 기세가 꺾이게 된다.
그 후 한 차례 공성전이 더 있었으나 마찬가지로 공성탑을 보고 무서워서 항복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갈리아인들은 키가 작은 로마인들을 무시했던 것 같다.
카이사르의 말에 따르면 “체격도 작은 자들이 무슨 재주와 힘으로 거대한 찹을 성벽까지 끌고 올 수 있는가?” 라고 비웃었다고 한다.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갈리아에 평화가 찾아왔으며 카이사르는 순회재판을 위해 갈리아 키살피나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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