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리아 전쟁 3년차 는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카이사르가 이탈리아로 떠나며 로마군은 갈리아 여러 부족으로 흩어져 겨울을 보내게 되었다.
그 중 12군단과 기병대가 알프스 산맥에서 주둔하게 되었는데 로마 상인들이 이 길목을 지날 때 안전하게 통행하도록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지역 사람들은 생각이 달랐던 것이다. 갈리아인들은 로마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선 로마군의 진지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방어에 취약하다고 생각했고 결정적으로 로마 병사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갈리아인들은 로마군을 공격 하기로 했다.
로마군은 6시간이나 진지를 방어하며 맞서 싸웠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로마군은 결단한다.
그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보충한 뒤 일제히 진지 밖으로 돌격하여 갈리아인들을 공격한다.
이 결단이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 전투로 목숨을 잃은 갈리아인이 1만명이라고 하니 그 시절의 로마군은 대단했던 것이 분명하다.
갈리아 전쟁 3년차 에는 카이사르의 첫 해상전이 벌어진다.
벨가이인이 또 다시 로마군에 도전한다.
이 부족은 호전적인 게르만족의 후손이며 갈리아 전재 2년차 때 로마군에 패배한 그 벨가이인이다.
푸블리우스 크라수스의 아들 크라수르가 이끄는 7군단은 대서양 해안에서 월동 중이 었는데 베네티족이 인질을 돌려받고 싶어서 다시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그들은 군량을 조달하러 갔던 로마군을 억류했다.
카이사르에 말에 따르면 갈리아인들은 매사 충동적이고 성급하게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아무튼 그들은 신성불가침으로 대접받아야 하는 사절들을 감금한 것이다.
그리하여 카이사르는 군선을 건조하고 노잡이를 차출하고 선원과 조타수를 모집하라고 명령했다.
카이사르가 말하기를 그냥 준비하지 않고 아주 철저히 준비했다고 한다.
로마군에게는 처음인 해상전은 아무래도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들이 카이사르의 전의를 자극한다.
카이사르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카이사르는 신성불가침이라는 약속을 어긴 갈리아인들을 묵과할 수 없었다.
그냥 두게 되면 다른 갈리아인들이 배우고 따라하게 되어 혼란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로마가 아니라 갈리아였고 약속과 질서를 지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또한 카이사르는 갈리아인들의 정치적 변화를 원했다.
그들은 변덕스럽고 언제나 갑작스럽게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다.
따라서 카이사르는 해상전에서 패배한 베네티족을 엄중히 처벌한다.
카이사르는 해상전을 철저히 준비한 것이 맞다.
전투가 벌어질 지역의 지리적 여건과 적군의 군사 능력 등을 아주 자세하게 조사했고 기록으로 남겼다.
베네티족의 군선이 대서양의 험한 파도와 기후에 얼마나 적합한지 설명하고 로마 군선과 차이점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카이사르에 따르면 로마군은 속도와 노질만 우수하고 모든 면에서 뒤쳐 졌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갈리아 전쟁 3년차 해상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로마군의 군선이다.
아무래도 로마인은 물론 바다를 건너와 정착 하긴 했으나 바다를 기반으로 살아가던 민족이 아니어서 그런지 편견 없이 배 모양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우선 베네티족의 군선은 로마군의 군선보다 고물이 더 높았다. 높은 곳은 싸우기 유리한 위치 였다.
이 때 등장한 것이 바로 로마인들의 특별한 장치다.
이 장치는 긴 장대 끝에 달린 날카로운 갈고랑쇠 였다.
로마군은 이 갈고랑쇠를 쭉 뻗어 적선의 돛대를 묶고 있는 밧줄에 걸었다. 그리고 힘껏 당겨 밧줄을 끊었다.
이 아이디어는 누가 생각해 낸 것일까? 이 장치가 로마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앞서 말했듯 로마군이 적군보다 뛰어난 점 딱 한가지 였는데 바로 노질이었다.
적선은 노질만으로 빠른 속도를 낼 수 없었다.
그러자 해상전은 지상전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갈리아인은 지상전에서 로마군을 이길 수 없었다.
로마군은 갈리아 함선을 둘러싸고 배에 기어올라 적을 쓰러뜨렸다.
카이사르에게는 뛰어난 부하 장교들이 많았다.
해상전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은 카이사르의 명령을 성공적으로 이행 했다.
그 중 퀸투스 티투리우스 사비누스는 적의 심리를 이용하여 승리했다.
그는 거짓 정보를 흘려 적이 방심하게 만들고 너무 믿고 싶은 것만 믿은 나머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너무 성급한 결정은 성공하기 어렵다.
크라수스는 집정관 루키우스 말리우스가 대패한 그 장소에서 소티아테스족과 결전을 치러야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젊은 크라수스와 로마군은 전의 불타며 만전을 기한다.
첫 전투는 행군 중 습격으로 시작되었다. 소티아테스족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줄행랑 쳤다.
크라수스는 갈리아인들의 천혜의 요새를 함락 시키며 많은 갈리아인들을 동요하게 했다.
갈리아인들은 로마군에서 복무하며 지식과 기술을 배운 자들을 지휘관으로 선출하여 로마군의 방식으로 로마군을 공격한다.
흥미롭다.
그러나 로마군은 적군 진지의 취약한 곳을 공략하여 적군을 포위하게 되고 결국 승리한다. 5만명 중 살아남은 자가 1만명 이였다고 하니 대 승리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 2022~2024 THE LIGHT. All Rights Reserved